안녕하세요 로지컬마인드입니다.
이번 9월 모의고사 문제들 중 가장 신선했던 문제가 있어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혹자들은 이번 빈칸 문제가 상당히 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정답률만 보더라도 6월의 오답률 1위였던 빈칸 33번 문제 정답률인 22%보다, 9월의 34번 빈칸 정답률이 15.8%로 훨씬 낮습니다. (EBS사이트 참고)
정답이 5번인 이유를 지문 내에서 찾아서 설명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이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시 들여다 본다면 사실 어려운 지문입니다. 소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문 내 ‘상징’이 많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34번 빈칸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가원의 메시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독해보다는 독서하듯 읽으세요’
기존의 빈칸 문제들은 ‘독해’, 즉, 지문 내에서 정보를 찾는 방식의 읽기를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34번 문제는 ‘독서’, 즉, 지문에 있는 내용을 ‘감상’하듯 읽을 때 답이 명확하게 보이는 문제였습니다.
이제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1. 우선 정답선지 부터가 ‘상징적’입니다.

5번선지 ‘장소들이 이동을 하지 않았다’는 문장은 직역으로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독해 방식으로 접근을 했던 학생들이라면 5번선지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선지이다 보니 정답 후보에서 제외하고 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고른 선택지는 직역으로 이해가 가능한 2번선지 ‘그림은 주요한 예술의 형태이다’(26%)입니다.
즉, 평가원에서 상위권을 변별하는 방법으로 지문 내 소재를 높이기보다는 선지에 상징적인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푸는 스킬이 훌륭한 학생보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며 읽은 학생들’을 상위권으로 변별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지문 내 ‘상징적’의미의 문장들과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2-1. 지문 내 places가 무슨 의미인가?
아마 이 지문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시면, ‘근데 이게 뭔 소리지?’하는 문장과 단어들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에서 문학적 ‘갬성’이 필요합니다.

‘화가들이 특정한 장소들을 거주지에서 들어 올렸다’(?) 이해되시나요? 아무리 직역으로 이해하려고 해봐도 쉽지 않습니다.
이번엔 감성을 더한 독해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화가들이 특정한 장소들을 거주지에서 들어 올렸다’(?) -> 말이 이상한데? -> 화가가 하는일이 그림을 그리는 거니깐..-> 아, 여기서 lifted particular places는 ‘특정한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냈다’ 정도의 의미겠구나
이런 과정이 되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places는 지문 내에서는 ‘물리적 장소’의 의미가 아닌 문맥상 ‘그림으로 표현된 장소’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5번 선택지의 places를 보았을 때도 이러한 문맥상의 의미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문 내에는 시종일관 그림이나 사진에 표현된 장소들을 아래와 같이 표현합니다.

지문 중반에 등장하는 ‘인물들, 풍경들, 사건들’은 그렇다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네, 맞습니다. ‘사진으로 표현된 인물들, 풍경들, 사건들’이 되겠죠.

이렇게 이 지문에는 사진이나 그림에 표현된 장소나 인물들을 단어들로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representations는 어원 그대로 ‘다시 나타낸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 지문에서는 ‘사진으로 표현된 여러 경험 및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Experiences역시 ‘경험’보다는 ‘사진으로 표현된 경험들’을 의미하구요, 마지막 문장의 places 또한 ‘사진으로 표현된 장소들’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문맥상의 의미를 고려하면서 읽지 않으면 저 단어들이 하나의 개념 ‘그림/사진에 표현된 것들’의 의미가 아닌 각각 별개의 개념으로 읽히면서 독해 응집성이 상당히 떨어지게 됩니다.
2-2. 그래서 이러한 places들이 어쨌다는 것인가?
places의 문맥상의 의미가 이러하다는 것은 이제 알겠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places들이 어떠하다는 것일까요?

이 지문은 사진으로 표현된 여러 경험들과 사건들이 ‘전 세계에 손쉽게 퍼졌다’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녹색으로 하이라이트 되어진 부분들만 읽어 보세요. ‘확산이 전 지구적 규모를 달성했다’, ‘경험들이 민주화 되었다’, ‘시공간적인 순환’ 등은 이제 사실 문맥상 모두 ‘전 세계에 손쉽게 퍼졌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죠?
3. 그래서 왜 답은 5번인가?

빈칸에는 사진술이 있기 전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그림이 가지고 있던 특성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사진의 특성인 ‘전 세계에 손쉽게 퍼졌다’의 반대개념이자,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된 ‘운반이 어려웠다’는 설명으로 ‘이동이 어려웠다(did not travel well)’가 적절하겠습니다.
4. 수능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이미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기조입니다만, 결국 평가원에서 상위권 변별용으로 출제하는 [3점]문항들은 문제를 잘 푸는 학생들’보다는 ‘언어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한 장치들이 깔려 있습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거야’
자이언티의 유명한 노래가사 중 일부입니다.
이 문장의 뉘앙스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역설(Paradox)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 ‘집(House)에 있지만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 정도를 이해할 수 있죠.
최근 평가원 문제들은 이러한 태도의 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전처럼 고난도 소재로 때리는 식의 고난도 문제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아마 정책상?).
따라서,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기 위해선 ‘독해’ 보다는 ‘독서’하듯 읽으세요.
우리가 언어에서 필요한 건 문제 풀 듯이 읽는 ‘분석적 독해’만이 아닙니다.
바로 ‘감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