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둠
2주 넘게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간농양 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다. 10만 명 중에 1명 정도가 이 병에 걸린다고 한다. ‘하...그 낮은 확률로 차라리 로또에나 맞지..’ 하는 심정이다. 2주 넘게 고열에 오한이 지속 되다보니 현실감각은 떨어지고 머릿 속엔 온갖 부정적인 생각 뿐이다. 담당 의사는 내 병이 일반적인 간농양과는 다른 양상이라 간암의 가능성도 있으니 조직검사를 받자고 한다. 1차 조직검사는 실패하고 2차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속은 새 까맣게 타들어간다.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려고 해도 매일 몸과 마음은 무너진다.
말기 암 환자들과 같은 병실을 쓴다. 말기 암은 메디컬 드라마의 소재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들의 호흡이 매일 피부에 직접 와 닿는다. 환자들의 숨소리는 한숨과 구분하기 힘들다. 어떨 땐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단전호흡이 들리다가, 어떨 땐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의 한숨이 들리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통성명 대신 병명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더라. 그 중 60대인 한 환자는 궤양암 말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랜 병원 생활 때문인지 눈에는 생기가 없다. 삶의 의지를 잃은 지 오래되어 보였고, 며칠이 지나도 그에게 찾아오는 가족은 없다. 해질녘 마다 마음이 허한지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모양이지만, 스피커폰 너머의 통화음에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결국엔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오지 않는 처자식들에 대해 하소연을 한바탕 하고나서 아이처럼 엉엉 울다 잠든다. 그는 일찌감치 치료는 포기했다고 한다. 그저 근처 호스피스 병원에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는 죽기 전까지 월 70만원만 내면 된다는 그의 말을 아직도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2. 빛
병실의 다른 환자는 간암 환자이다. 이미 십년 전에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병원에서 선고를 받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80세가 넘은 나이지만 눈에는 생기가 있고 언어가 또렷하다. 대뜸 핸드폰의 자신의 상체 근육 사진을 내게 보이며 자랑까지 한다. 이런 생기와 활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환자 옆에는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가족이 있다. 병실 칸막이 너머로 ‘여보가 어떤 사람인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번에도 할 수 있어’라는 아내의 응원이 나지막히 들린다. 매일 아침 깨끗이 씻고 면도를 하고 스킨로션을 바르는 그의 모습에는 삶에 대한 투지마저 느껴진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후로 매일 내 가족들은 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요리해서 가져온다. 그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어떤 미션이라도 하듯이, 매일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의 존재가 어떠한 조건 없이 환영받는 곳,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가족들의 존재를 통해 매일 나의 가치를 확인받는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빛을 향하게 하는 힘은 결국 가족이구나. 새로 출시될 아이폰이나 전기차 따위가 아닌, 내 가족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빛 너머에 보인다.
3. 가족의 가치
코로나가 한창이기 전 매년 수능 시험장에 응원을 갔었다. 부모님의 손을 꼭잡고 입실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학생들의 입실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교문 밖에서 기도를 올리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부모님들의 그 뜨거운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수험생의 부모가 되기전까지는 그 깊고 복잡한 감정을 헤아리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자녀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나오는 기도겠지. 긴 수험생활이 그렇게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내 가족들의 깊은 배려와 사랑이 빛을 내고 있어서가 아닐까.
P.S
2차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암은 아니고 농양이라고 한다. 염증 수치도 많이 떨어져 이틀 후에는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퇴원을 하고 나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가족들과 손짜장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